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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주얼리의 역사 (4) - 비잔틴과 중세 주얼리(1)
글쓴이 관리자 (IP: *.48.115.121) 작성일 2015-12-11 13:23 조회수 979

 

Beaujeu의 Ann. 유명한 그림 Maitre de Moulins의 부분. 1498년경. 원작은 Moulins 성당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일러스트레이션: 김성희

 

여러 가지 형태로 연마된 보석과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던 신비하고 로맨틱하며, 상징적이고 아름답게 빛나는 중세시대 주얼리는 사랑을 전하는 전령 혹은 기사의 명성을 나타내는 그 시대만의 것으로 이 시대를 전후로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4세기 초반 로마제국에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기독교적 도상학(아이콘)은 헬레니즘이나 로마시대의 다신교(이교도) 문화를 박탈하거나 재건하도록 했다. 특히 주얼리에 있어서는 에메랄드, 진주, 사파이어의 사용이 가장 많이 요구됐다. 거기에 얼굴 없는 매매자들을 통해 구입된 색유리 사용은 이미테이션 보석 역할을 했다.

 

이 시대의 주얼리 제작에 있어서 가장 높은 가치로 평가되어지는 것은 금을 레이스처럼 장식한 섬세한 투각(구멍을 내는 기법) 방식이다. 게다가 금으로 주화를 만들어 반지나 메달로 착용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이 비잔틴 문화의 화려한 예는 부와 재산의 궁핍으로 어려움을 겪어오던 기독교 교회의 주교들을 놀라게 하고도 남았다.

 

중세시대의 다채로운 장식 취향은 다양한 보석을 사용하게 했다. 이것은 이 시대의 주얼리 특성을 결정짓는 요인이 됐고, 아직까지 비잔틴 문화의 잔재를 이 시기의 주얼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파이어, 루비, 에메랄드, 다이아몬드 이외에도 터키석과 토파즈 등이 이 시대에 선호됐던 보석들이다.

 

1200년대부터는 사파이어, 루비, 에메랄드, 다이아몬드 그리고 무지개 효과가 나는 진주를 박는 주얼리가 유행했고, 14세기는 루비 사용이 사파이어 사용을 능가했다. (사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루비는 당시에는 드물게 사용됐고, 대신 스피넬이 많이 사용됐다) 

 

카를로마뇨(샤를마뉴) 대제 시기부터 1200년대까지 주얼리에 사용된 모티브는 비잔틴 귀족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보석과 진주가 셀 수 없이 많이 박힌 예식에 사용된 의복이나 귀걸이와 팔찌,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벨트와 무거운 목걸이들이 그 좋은 예다.

 

 

이집트 비잔틴 시대의 체인, 기원후 약 6000년경. 몸통을 두르는 4줄의 체인이 가슴과 등 중앙에 위치한 두 개의 큰 원형 디스크에 의해 이어져있다. 런던 대영박물관 소장.   / 일러스트레이션: 김성희


중세 주얼리의 기본이 되는 장식 기술은 여러 가지 종류의 에나멜 기법이었다. 비잔틴 시대부터 사용된 기법인 Cloisonne, 1290년경에 발명된 반투명한 기법의 Champleve, 그리고 1360년경부터 en Ronde Bosse라는 에나멜 기법이 사용됐다.

 

또한 고딕양식이 성행했던 14세기에는 벽의 움푹 들어간 곳이나 묘지 위를 덮는 돌 장식, 크로켓들의 간단한 형태 등 동시대 건축 스타일에서 쓰인 형태가 벨트의 머리장식이나 망토 장식은 물론 주얼리에도 많이 사용됐다.

 

이 우아하고 세련된 형태는 사랑하는 연인의 형상을 담는 펜던트나 에나멜로 색칠된 이니셜 브로치 혹은 여러 주제에 의해 어떤 상황을 설명하는 주얼리 등으로 제작됐다.

 

 

9세기 말. 영국. 니엘 상감으로 장식된 Wessex의 왕 Ethelwulf의 금반지.
런던, The British Museum 소장.  / 일러스트레이션: 김성희

 

 

그 외에 사용이 빈번했던 유행으로 기사 문장 등이 부착된 메달이 있다. 1390년경 영국왕  리차드 2세는 그의 문장이 장식된 메달이나 브로치를 집안 사람들이나 신하 등 그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착용하게 했다. 이런 형태의 빛나는 주얼리들은 말할 것도 없이 중세 말의 가장 아름다운 주얼리들이다.

 

중세시대의 주얼리는 장인들에 의해서 가내 수공업으로 만들어졌지만 14세기 말부터는 공장에서 생산되기 시작했고, 보석은 조각되거나 혹은 발에 물린 형태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특히 이 시대에는 보석의 밑바닥에 색칠된 금속판을 붙여 보석의 빛을 더 잘 반사하도록 하는 포일 백(Foil Back) 기술이 허용됐다. 이런 기술에서 오는 부정행위는 13세기부터 시작된 광범위한 금속 재료법률 초안을 만들게 한 기초가 됐다.

 

 비잔틴과 중세 주얼리(1)에서 계속----->>>

 

/ 글: 김성희 디자이너

 

 

귀금속경제신문(www.diamond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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